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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생활탐색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상과 일상을 그린 대한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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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상과 일상을 그린 대한민력

임시정부는 통일된 시간을 통해 외세에 저항하고자 하는 일치된 전략을 세울 수 있었으며, 그 방법으로 자립하여 독립전쟁에서 승기를 잡는 목표를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 글. 김시덕(을지대학교 교수)

 

달력은 정치, 문화, 과학적으로 다양한 의미가 함축된 것으로 달력의 통일은 시간과 도량형의 통일을 의미했다. 이것은 일 년 동안의 월일, 해와 달의 운행, 월식과 일식, 절기, 특별한 기상 변동 따위를 날의 순서에 따라 적은 책인 역서에 해당한다. 이러한 역서 발행은 국가 통치 질서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곧 독립국가의 지위를 보여주는 최소한의 통치행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처음으로 만든 달력인 ‘대한민력’은 ‘대한민국’에서 발행한 책력冊曆 혹은 역서曆書, almanac, 달력이라는 뜻도 있지만, 민주공화국의 달력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조선총독부의 ‘조선민력’에 대한 항일의 의지도 담고 있다. 이렇듯 국민과 함께하는 시간 흐름과 국가의 기념일, 생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국민주권을 보장하는 민주공화국 정부의 통치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임시정부의 대한민력은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다.

대한민력이 전하고자 했던 것들

대한민력의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력은 양력을 기본으로 7요일을 사용하였다. 1월에서 6월까지는 매월 5, 6일과 20, 21, 22일에, 7월에서 12월까지는 7, 8일과 22, 23, 24일에 해당 월의 절기를 표기하였다. 3월 1일에는 ‘독립선언일獨立宣言日’, 11월 12일(음 10월 3일)에는 ‘개천기원절開天紀元節’이라고 붉은색 글씨로 국경일을 표기하였다. 날짜에 차이가 나는 것은 경성을 표준시로 함으로써 나타난 현상이다. 5월 3일에는 어천절御天節(음 3월 15일), 7월 21일부터 초, 중, 말복, 8월 29일에는 국치일을 표시하여 기념일로 삼았다.
대한민력에서 음력, 절기, 달의 정보를 비중 있게 넣은 데는 만주에서 논농사를 개발하여 보급하는 등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임시정부의 군민들인 이주 한인들에게 농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대한민력에서 제공하는 시간과 생활정보는 전통 책력에 비해 매우 소략한 것처럼 보인다. 또한 연령대조표나 연신방위, 택일에 필요한 가취주당도嫁娶周堂圖, 길일 등에 대한 정보가 생략되었으나 양력을 기준으로 역서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정보 제공에는 부족함이 없다.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구성한 대한민력

임시정부가 최초로 발행한 달력, 대한민력은 1919년 12월에 제작한 1920년도용 민력이다. 가로는 28.7cm, 세로 39.2cm이고, 구성은 크게 그림 부분, 달력 부분, 생활정보, 국경일, 발행일부 부분으로 나뉜다. 민력의 상단 가운데에는 독립문을 통과하여 국내로 진공하는 독립군을 묘사한 그림이 배치되어 있다. 그 양쪽에 좌우 대칭으로 태극기가 있고 왼쪽 태극기의 괘 순서는 왼쪽 상단으로부터 오른쪽으로 감(☵) 곤(☷) 리(☲) 건(☰)의 순서이고, 태극은 세로로 청색과 홍색을 배치하여 현재의 태극기와는 차이가 있다. 오른쪽은 대칭으로 그 반대로 되어 있다. 그림의 오른쪽과 왼쪽의 태극기 아래에 ‘독립’과 ‘만세’를 쓰고 아래위에 붉은색 선으로 장식하였다. ‘독립’ 아래에는 붉은색 글씨로 국경일을 표기하였다. 오른쪽에는 개천절 11월 13일, 왼쪽에는 독립선언일 3월 1일이라고 써 내려갔다. ‘만세’ 아래에는 ‘중화민국구년中華民國九年’, 그 왼쪽에 ‘서력 1920년西曆 一九二0年’이라고 아라비아 수식으로 표기하였다.
달력 그림 아래 한가운데에는 붉은색 바탕에 주문 인장 형태로 동그라미 안에 붉은색으로 ‘음양력대조표陰陽曆對照’라 제목을 달았다. 그 아래에 우에서 좌로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1월에서 12월을 배치하고, 해당 월 아래에 별도의 칸을 마련하여 해당 월의 대소와 윤달을 표기하였다. 그 아래로 해당 월의 날짜를 세로로 표기하였다. 날짜는 검은색 아라비아 숫자로 썼고 그 오른쪽에 작은 글씨로 음력을 부기하였다.
‘음양력대조표陰陽曆對照’의 좌우에는 원숭이를 서로 마주 보게 배치하고 오른쪽 원숭이에는 둥근 원 안에 ‘경’을, 그 반대편에는 ‘신’을 백문으로 새긴 인장처럼 찍어 경신년庚申年을 표시하였다. 그 아래로 ‘월월요람月月要覽’이라는 제목 아래에 오른쪽에는 1월에서 6월, 왼쪽에는 7월에서 12월까지의 해당 월내의 절기, 일출입, 주야간, 망삭, 상하현의 날짜와 시간 등 생활 정보를 붉은색 글씨로 표시하였다. 생활 정보 아래에는 해당 날짜와 시간은 검은색으로 표기하였다.
달력의 내용이 끝나는 곳에 경성을 표준시로 한다는 표준시의 적용기준을 적고, 그 아래 장식 테두리 밖에는 발행처를 기록하였다. 발행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학무부 편집부’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력(1920)

©김시덕

독립국의 지위를 나타내며 민주공화정치를 담은 대한민력

대한민력은 임시정부의 첫 번째 달력으로 독립국으로서 통일된 시간체계를 공유하도록 발행하여 국민에게 배포되었다. 이는 임시정부가 ‘국민주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민주공화정치를 하였음을 보여주고 민주공화국 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통치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대한민력이 지닌 가치와 특성을 통해 그 의미를 살펴보자.
첫째 대한민력은 대한민국의 독립 시간체계와 세계 보편적 시간 체계를 공유한다. 대한민력은 4개의 기년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대표기년법은 ‘민국기년’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을 연호로 사용하여 독립국임을 드러냈다. ‘대한민국 2년’이라는 붉은색 표기가 그것이다. 다음으로 단군개국기원인 ‘단기’를 통해 민족국가를 이끌어가는 정신적 가치로 제시하였다. 또한 세계의 표준시간 체계인 ‘서력기원’이 있다. 서기는 기독교기년법이면서 통년기년법으로 세계정세를 읽고 대응하는 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중화민국기년’이 있다. 1912년부터 시작된 중화민국 연호를 사용한 것은 중국 영토에 임시정부를 세웠기 때문이었다.
한편 「대한민력」하단에는 “경성표준시를京城標準時를 본本함으로 중국북경시中國北京時보다는 44분이四十四分이 이르고(봉천奉天보다는 31분三十一分, 길림吉林보다는 3분이三分이 이르고) 적국敵國의 표준시標準時보다는 30분三十分이 느즘”이라고 표준시가 경성京城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이는 대한민국이 중국이나 일본이 정한 표준시를 사용하지 않고, 동경 127.5도의 ‘서울표준시’를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독립국임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다.
둘째 국경일과 기념일을 통하여 국민통합 정치를 나타낸다. 대한민력을 보면 국가는 국경일을 통해 전 국민이 그 사건과 대응하는 하나의 시간에 동시에 속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환기시키고, 하나의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집단적 단일성을 부여한다. 임시정부 역시 독립선언일과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고 상하이 거류민과 함께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하여 집단적 단일성을 부여하였다.
셋째 국민 주권을 주장하는 민주공화정치를 담고 있다. 민주공화제를 정체로 채택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임시헌법(1919.9.11.) 제2조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 있다.”고 주권의 주체를 분명히 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시간 기준을 제공하는 역서 발행은 주권을 보장하는 일이었고, 임시정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통치행위였다.

독립운동과 대한민력

임시정부는 통일된 시간을 통해 외세에 저항하고자 하는 일치된 전략을 세울 수 있었으며, 그 방법으로 자립하여 독립전쟁에서 승기를 잡는 목표를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력에 담긴 임시정부의 이상과 목표, 그리고 그것들의 의미를 알아보자.
첫째, 국내진공 그림으로 독립전쟁의 의지를 표명했다. 대한민력의 상단 가운데에는 독립문을 통과하여 국내로 진공하는 끝없는 군대행렬 그림이 있다. 1920년 독립전쟁의 원년으로 선포한 임시정부의 꿈을 그린 것이다. 1919년 말에는 임시정부가 지향하는 독립운동의 방략이 독립전쟁이었고, 임시정부는 이를 대한민력의 그림을 이용하여 전파 및 홍보하였다. 즉, 대한민력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전략을 전파하는 전령이었던 셈이다.
둘째, 독립운동전선을 연계하는 시간통일의 지휘서이다. 조선총독부는 그들이 발매하는 ‘조선민력’이라는 식민지배에 적합한 시간기준만 사용하도록 강제함으로써 국민의 주권은 물론 문화까지 말살한다. 작전 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간의 일치인데, 일제가 정한 시간체계인 ‘조선민력’을 사용해서는 정보유출의 위험이 컸다. 그래서 임시정부는 독자적인 시간기준인 대한민력을 제작 배포하여 세계 각지의 독립운동가와 단체, 국민들이 독립운동 작전을 수행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대한민력은 독립전쟁의 총지휘부인 임시정부에서 내린 시간을 일치시키는 작전지휘서이자 비밀지령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임시정부는 대한민력으로 세계 각지의 동포들을 연대하고, 독립적 시간정보를 제공하여 통일된 독립운동전선을 펼치고자 했다.
대한민력은 임시정부 최초의 민력으로, 이를 통해 독립을 염원하던 임시정부의 시간이 하나로 흐르는 역사적인 순간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대한민력은 당시의 국민주권을 위한 문화정책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