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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온 소식

동양전도에 헌신하는 서양 선교사에게

상하이에서 온 소식

동양전도에 헌신하는 서양 선교사에게

『독립신문』에 따르면, “다소 냉랭한 태도를 취하던 회중은 이 연설의 결과로 다대한 감동을 받고 각각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로 언약하였다.”

— 글. 김흥수(목원대학교 명예교수)

손정도(1882~1931)

©독립기념관

상해에서 안창호와 손정도

©독립기념관

“손정도 군이 내방함에 흥사단 입단 문답식을 속히 행하라 하고, 북경에서 개최하는 동양선교사 총회에 갈 일을 상의”하였다. 도산 안창호의 일기(1920년 1월 29일)에 나오는 문장이다. 일기 속의 손정도 군은 임시의정원 의장 손정도이다. 손정도는 1918년까지 정동제일교회 담임목사였으므로 상해에서 ‘의장 목사’로도 불렸다.
동양선교사 총회를 더 정확히 말하면, 1920년 2월 11일부터 16일까지 북경에서 개최될 미국감리회 동아시아총회(Central Conference of Eastern Asia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이다. 동아시아총회는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 활동하는 미국감리교 선교사들과 현지 감리교회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선교사업을 협의하는 회의였다. 안창호의 일기를 보면 2월 2일에도 안창호는 손정도와 함께 동양선교사 총회를 준비했다.


“오전에 북경에서 개최하는 동양선교사회에 선전할 일”을 기초했으며, “손정도 군이 내방하여 북경 선교사회에 가서 할 일을 상의하다.”

이렇게 안창호, 손정도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두 차례에 걸쳐 동양선교사 총회를 준비한 것은 이 회의에 참석하는 동아시아 교회 지도자들, 특히 미국 선교사들에게 일제의 한국 지배와 그로 인한 한국인들의 참상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독립신문』 1920.3.11.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임시정부가 파견하여 동양선교사 총회에 참석한 인물은 의정원 의장 손정도와 외무차장이자 감리교 목사인 현순이었다. 두 사람은 동양선교사 총회의 정식 총대로 참가한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의 특파로 미감리회 동양선교총회에 참석해서 한국에서 온 총대들을 만났다. 감리교회는 1919년 11월 동아시아총회에 참석할 대표를 선출하였는데, 선교사로 노블(William A. Noble)과 케이블(Elmer M. Cable), 무어(John Z. Moore), 감리교 목사로 오기선, 최병헌, 김종우, 안창호, 배형식을 뽑았다.
이 회의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 감리교회 대표 114명이 참석하였다. 손정도는 오랜만에 한국과 만주에서 온 8명의 감리교 대표들을 만났다. 이 회의에서 토론하고 결의한 것은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감리교회를 동아시아총회에 가입시키는 문제, 중국감리교회의 총회 조직, 여선교회와 주일학교, 청년회 운동의 지원, 일본에서 개최될 세계주일학교대회에 교회 대표 파송 등 감리교회의 선교 사업 문제였다. 『독립신문』에 따르면, 이 총회에서 손정도는 ‘동양전도에 헌신하는 서양선교사에게’라는 제목으로 연설했다. 그러나 현순 목사가 남긴 필사본 ‘현순자사玄楯自史’에 의하면, “그때 손정도도 왔다가 선교사 수십 인을 청하여 접대하고 동양평화의 관건은 오직 조선독립에 있음을 역설하였다.” 이것을 보면 연설은 동아시아총회 석상에서 한 것이라기보다는 손정도가 총회 중에 선교사들을 초청, 식사를 접대하는 별도의 자리에서 한 것 같다. 이 연설문은 『독립신문』(1920년 3월 11일)에 실렸는데 상, 하 두 번에 걸쳐 게재될 예정이었던 것 같다.
다음에 소개하는 연설문 상은 일부 표현을 읽기 쉽게 현대문으로 바꾼 것이다. 손정도의 연설문 하는 그 후 게재되지 않아서 전문을 알 수 없다. 연설문 게재는 미완인 상태로 끝났지만 손정도는 선교사들에게 영어로 번역해 온 연설문을 배포했으므로 선교사들이 남긴 문서에서 이 번역문을 찾으면 연설문 전문이 밝혀질 것이다.

동양전도에 헌신하는 서양 선교사에게

“금일 한국이 독립하는 것이 정의와 인도에 합하고 동양평화 및 세계평화에 추요하며 더욱 동양 예수교 발전에 큰 영향이 있을 것은 여러분의 양심상에 이미 판단이 있을 줄 믿노라.
불쌍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서 동양의 불쌍한 사람을 건지기에 노력하시는 여러분은 금일 한국의 불쌍한 민족을 건질 마음이 간절할 줄 믿노라.
여러분은 선교의 신성한 책임을 가지고 온 고로 동양의 정치에는 직접으로 간섭함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줄 알거니와 지금 비참한 중에 빠진 한국인을 건져 자유를 누리도록 도와줌은 결코 정치상 간섭이라 할 수 없고 불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종교적 및 인도적 의무라 하리니 지난번 미국에서 불쌍한 벨기에를 건진 것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많은 재정과 생명을 희생하여서 한 것이나, 이는 다만 표면에 드러난 사실에 불과하고 진실로 미국으로 이 일을 하게 한 근본적 원인은 미국 각 예배당의 목사와 목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종교적 인도적으로 노력한 결과요, 지나간 과거에 미국이 흑인 노예를 해방함도 그 참된 원인은 예배당의 교단에서 일어난 것이라 그런즉 여러분은 흑인 노예를 불쌍히 여기던 마음과 벨기에인을 불쌍히 여기던 마음으로 대한 사람도 불쌍히 여기소서.
타민족의 불의한 압박하에 신음하는 2천만 민족을 건져내어 천부의 자유를 누리도록 원조함이 인도와 정의에 일치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와의 관계가 어떻게 밀접한 것은 특히 주의할 일이라. 동양평화를 깨뜨린 재앙의 근원은 일본의 침략주의에 있으니 한편으로 동양대륙을 침략하고 한편으로 태평양 이권을 독점하려 하여 이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비인도적 횡포 수단이라도 가림이 업는지라. 동아시아 제 민족이 불평과 근심과 두려움으로 이를 대하여 동아시아에 참극이 그칠 날이 없으니 동아시아의 요란은 합하여 세계의 평화에 파급할 것은 명백한지라. 이 점으로 보아 한국의 독립으로써 일본의 야심의 손톱과 어금니를 끊어내는 것은 다만 동양평화에 대하여만 추요할 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에 대하여도 그러하다고 확언하는 것이라.
또 종교적으로 보건대 한국 내의 과거의 예수교회의 지금까지 없었던 발달은 동아시아 제 민족에게 비상한 감동과 모범을 주었나니 이는 여러분께서 다 아는 일이요 늘 말하는 바이라. 그러므로 한국이 비기독교적 일본의 통치를 벗어나 한국의 기독교로 하여금 영원히 자유 발전의 기회를 향유하게 함은 동아시아 선교에서 큰 이익이 될 것도 확실한 일이라. 그런즉 한국독립 문제는 다만 한국인 자신의 복리 문제만이 아니오 실로 동아시아 제 민족 및 세계 전 인류의 문제라 하노라. 그러므로 불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을 천직 삼는 여러분은 한국인을 불쌍히 여기는 동시에 동아시아 제 민족과 또한 세계 전 인류가 장래에 입을 화를 막기 위하여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는 분투에 동정의 원조를 주는 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으리라 믿노라.
나는 이제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어떻게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말하려 하노라.
우리가 여러분에게 청하는 구원은 총이나 검을 가지고 우리를 도와 전쟁하여 달라는 것도 아니오, 많은 금전을 달라는 말도 아니오, 또 일본 정부를 향하여 정치상 간섭을 하여 달라는 것도 아니오, 다만 여러분이 동양에 와서 친히 귀로 듣고 눈으로 본 일본의 비인도적 행위와 한국의 불쌍한 사정과 한국이 독립하여야 마땅한 이유를 세계에 밝혀 알려달라 함이로다.
상술한 바와 같이 이번 사망에 빠졌던 벨기에가 그중에서 살아나와 다시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은 미국 국민이 생명과 재산을 희생하여 원조한 때문이요 미국이 그와 같이 하게 된 것은 미국 국민이 정의와 인도를 위하여 독일에 대해서는 적개심이 일어나고, 벨기에에 대하여는 동정심이 생긴 때문이며 미국 국민에게 이 적개심과 동정심이 일어남은 그들이 벨기에의 사정을 분명히 알았음이니, 지금 세계가 한국의 사정을 자세히 모르는 것과 같이 그때 미국 인민이 벨기에의 사정을 몰랐다면 그들에게 아무리 정의 인도의 마음과 박애의 정신이 드높다 한들 어찌 이 적개심과 동정심이 일어났으리요. 그리하고 미국 인민으로 이러한 정신을 격발케 한 것은 실로 미국내 각 에배당 목사들이 일치하여 인민에게 한편으로 벨기에의 사정을 알리며 한편으로 정의와 인도를 고취한 결과라.
이와 같이 여러분이 한국의 사정을 세계에 전하여 널리 퍼뜨리는 날 세계의 한국에 대한 동정은 벨기에에 대한 것보다 못하지 아니할 줄을 확신하노라. 나는 짐짓 여러분에게 특히 큰 책임을 지우려 함이 아니나 대한 2천만 사람을 사망에서 구출하여 천부의 자유를 누리게 하고 못 누리게 함이 여러분이 세계의 대한에 대한 동정심을 일어나게 하고 아니함에 달렸으니 불쌍한 자를 불쌍히 여기기로 천직을 삼는 선교사 여러분이 깊이 생각할지어다.(미완)”


임시의정원 의장 손정도가 이 연설에서 역설한 것은, 한국독립 문제는 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일본의 비인도적 행위와 한국의 비참한 상황을 세계에 알려달라는 것이며, 이것은 종교인의 정치적 간섭이 아니라 종교적 인도적 의무이며, 일제의 압제하에서 신음하는 2천만 한국인에게 천부의 자유를 누리게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독립신문』에 따르면, “다소 냉랭한 태도를 취하던 회중은 이 연설의 결과로 다대한 감동을 받고 각각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를 언약하였다.” 이 회의에 참가한 선교사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선교사들이었으므로 손정도의 연설은 중국 내의 다른 교파 선교사들과 미국교회에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상해 임시정부 시절 손정도의 역할은 다양했으며 그중 하나가 이 연설처럼 국내외 기독교의 조직을 통한 독립운동이었다.

장낙도, 최병헌, 손정도, 김유순 목사

©국가보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