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메뉴버튼 퀵메뉴버튼 최상단으로 가기

세계의 독립운동

한국과 닮은 아일랜드…식민 지배와 내전의 고통, 그리고 극복

세계의 독립운동

한국과 닮은 아일랜드…식민 지배와 내전의 고통, 그리고 극복

식민 지배, 내전이라는 크나큰 역사적 고통을 겪은 한국과 아일랜드. 그 과정에서 남겨진 독립의 기록과 기억, 내전의 상흔은 다양한 형태로 남았다.

— 글. 김희경(인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지구상에서 대한민국과 유사한 역사를 가진 나라는 어디일까? 여러 국가가 있지만, 유럽의 아일랜드가 한국과 가장 비슷한 과거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일랜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식민 지배와 내전을 경험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국의 국민들 가운데 서로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기억과 아픔을 공유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역사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던 지역에선, 그 기억을 재현하거나 각색하는 방식의 작품들이 다수 만들어진다. 한국과 아일랜드에서도 여러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자국 투쟁의 역사와 아픔을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아일랜드의 작품들을 감상하면, 아일랜드의 근현대사를 한눈에 파악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형제의 비극으로 역사 그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아일랜드 투쟁 영화 가운데 국내외에서 많이 알려진 영화로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을 꼽을 수 있다. 이 영화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나의 올드 오크〉(2024) 등을 만든 켄 로치Ken Loach 감독이 연출했다. 로치 감독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만든 후에도 아일랜드 역사를 다룬 〈지미스 홀〉(2014)을 연출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역사적 주요 주체와 사건을 소재로 활용하면서도, 가상의 인물들을 만들어 이들을 중심으로 비극을 극대화했다. 뛰어난 연출과 스토리로 2006년 제5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다. 칸 국제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베니스, 베를린, 칸) 중에서도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야기는 1920년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다. 영국의 오랜 통치를 받았던 아일랜드에선 당시 독립 투쟁이 한창 일어났다. 그러다 독립을 하긴 하지만, 불완전한 독립으로 비극적인 내전까지 발생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아일랜드의 젊고 유망한 의사 데이미언(킬리언 머피Cillian Murphy)이다. 그는 처음엔 영국에 가서 병원을 열려고 한다. 하지만 연이어 영국군의 무자비한 행동을 목격하며, 영국행을 포기하고 아일랜드에서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당시 영국군은 아일랜드인 여러 명이 함께 모이는 것 자체를 금지했다. 영화에서도 영국군은 데이미언, 그와 함께 스포츠를 즐기던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가한다. 그러던 중 한 명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때만 해도 데이미언은 영국에 가려고 한다. 하지만 영국행 기차에 오르기 전, 기관사에게도 폭행을 저지르는 영국군을 목격하고 결국 영국행을 포기한다. 그리고 형인 테디(패드레익 들러니Padraic Delaney), 친구들과 함께 치열한 독립 투쟁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미언과 테디는 많은 고초를 겪게 된다. 내부 밀정으로 인해 발각되고, 영국군에게 대거 끌려가 고문도 당한다. 고문자는 테디의 양쪽 손톱을 모두 빼버리기도 한다. 한국 관객들은 해당 장면들을 보며 한국 독립 투사들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다.
그렇게 어렵게 투쟁을 이어가던 중 가까스로 독립이 찾아온다. 하지만 비극은 다른 형태로 이어진다. 영국과 아일랜드가 맺은 ‘영국–아일랜드 조약Anglo-Irish Treaty’을 둘러싸고 아일랜드 사람들 간에 갈등이 심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끝내 내전이 발생하게 된다. 영화는 이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데이미언, 테디 형제를 통해 극대화한다. 데이미언은 해당 조약이 불완전 조약임을 강조하며 완전한 독립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테디는 조약을 이행하며 조속히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러다 데이미언 무리가 테디가 이끄는 군대에 침투해 무기 반출을 시도하게 된다. 이를 진압한 테디는 데이미언을 가둔 후 설득을 시작한다. 독립 투쟁을 끝내고 아내와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데이미언은 형의 설득에도 끝내 죽음을 선택하고, 테디는 부하들에게 데이미언의 총살을 지시한다. 신념을 지키다 자신의 형 앞에서 무참히 죽어가는 데이미언, 냉담하게 총살을 지시한 후 동생이 죽자 그를 끌어안고 눈물을 쏟아내는 테디의 모습은 아일랜드 역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장면은 영화사에서 길이 남은 명장면으로도 꼽힌다.

800년의 지배에 시달린 아일랜드

그렇다면 아일랜드의 비극이 시작된 시점은 언제일까? 영국의 침략이 시작된 것은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켈트족이 자리 잡은 아일랜드 땅은 그 이전부터도 다른 민족의 침공에 시달려 왔다. 기원전 58년엔 로마인, 9세기엔 노르만족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다 1066년 노르만족은 영국도 침략했다. 영국에 새로운 노르만 왕조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100년 후, 영국의 노르만족은 아일랜드를 공격했다. 1171년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침공하고 식민지로 삼았다. 이때부터 영국과 아일랜드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도 당시만 해도 영국, 아일랜드 사람 모두 가톨릭을 믿고 있어 큰 충돌이 일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1534년 헨리 8세가 아일랜드를 공격하면서부터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헨리 8세는 종교 개혁으로 영국 성공회를 만들었고, 아일랜드 주민들에게도 해당 종교를 강요했다. 이에 반발할 경우엔 무력을 사용해 진압했다. 그중에서도 저항이 심했던 북부 아일랜드엔 영국인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이에 따라 북아일랜드에선 심각한 종교 갈등이 발생하게 됐다.
그렇게 12세기부터 시작된 통치와 지배는 800년 가까이 지속됐다. 영국인은 아일랜드로 이주한 영국인들에게 막대한 토지를 분배했다. 반면 아일랜드인을 소작농으로 만들어 곡물을 수탈했다. 소작농이었던 아일랜드인들은 대기근을 맞닥뜨렸을 때 유일한 주식인 감자로 버텨야 했다. 그러다 1845년엔 미국에서 시작된 ‘감자 역병’이 돌기 시작해, 아일랜드인 100만 명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1921년 영국–아일랜드 조약이 체결되면서 총 32개주 중 남부의 26개주가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했다. 앞서 살펴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이 조약이 체결되기 전후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영국인들이 다수 거주하던 북부 6개 주는 영국 지배령으로 남았다. 자치권을 얻었지만, 완전한 독립은 아니었던 셈이다. 또한 아일랜드 자유국의 외교권과 군사권은 여전히 영국이 갖고 있었다.
조약을 둘러싸고 갈등이 깊어지며 내전까지 발생했다. 1922~1923년 일어난 아일랜드 내전은 영국–아일랜드 조약 체결에 따른 것이었다. 조약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나아가 완전한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세력과, 조약에 따라 행동하며 현실과 적절히 타협해야 한다는 세력으로 나뉘어 충돌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중 조약 반대파인 아일랜드공화국군Irish Republican Army·IRA은 아일랜드 내전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내전은 조약 찬성파의 승리로 끝나게 됐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데이미언은 IRA를, 테디는 조약 찬성파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1949년에 이르러 아일랜드는 영국 연방에서 탈퇴했고, 이로써 ‘아일랜드 공화국’이 설립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아일랜드에선 지난한 분쟁의 역사가 반복됐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98년까지 30여 년 동안 북아일랜드에선 개신교와 가톨릭교의 갈등이 일어났다. 1972년엔 영국 공수부대가 아일랜드계 가톨릭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피의 일요일’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두 세력 간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3,500여 명이 죽고 나서야 미국의 중재로 영국,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이를 ‘벨파스트 협정Belfast Agreement’이라고 한다. 벨파스트 협정은 북아일랜드를 영국령으로 인정하나, 아일랜드공화국과 북아일랜드 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협정으로 아일랜드는 비로소 오랜 분쟁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격정적 아일랜드 역사 더욱 알고 싶다면

아일랜드 역사는 이처럼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복잡하고 격정적인 편이다. 아일랜드 역사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외의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도 결정적 사건과 핵심 인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닐 조던Neil Jordan 감독의 영화 〈마이클 콜린스〉(1997)는 실제 IRA 창시자였던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1890~1922)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 영화이다. 콜린스는 본래 자신이 만든 IRA의 본래 취지와 다르게 영국과의 조약을 체결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자 1922년 IRA 내 강경파들이 그를 암살했다. 영화는 콜린스의 태도 변화, 그로 인한 역사적 여파와 주요 사건들을 배치해 조망한다. 〈마이클 콜린스〉는 1996년 제5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블러디 선데이〉(2004)는 북아일랜드의 유혈사태인 ‘피의 일요일’ 사건을 그린다. 이 영화는 데리 시의 주민들이 영국에 불법으로 억류된 것에 항의해 행진을 벌이며 시작된다. 비폭력적인 평화 행진이었지만 영국 정부는 과잉 진압,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 진압으로 수많은 사람이 숨지거나 다쳤다. 영화는 당일 사건을 포함해 이 사건이 은폐되고 왜곡되는 과정까지 담았다. 이를 통해 다큐멘터리와 같은 실화적 요소를 최대한 부각하고 있다. 〈블러디 선데이〉는 2002년 제5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다.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세계적으로 호평받은 이후 아일랜드 투쟁 영화는 더욱 활발히 제작됐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헝거〉(2008),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의 〈천국에서의 5분간〉(2009), 제임스 마쉬 감독의 〈섀도우 댄서〉(2013), 로치 감독의 〈지미스 홀〉(2014), 마틴 맥도나 감독의 〈이니셰린의 밴시〉(2023) 등이 잇달아 개봉했다.
그중 〈이니셰린의 밴시〉는 국내에서도 2만 7,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 이니셰린에 사는 파우릭, 콜름의 갈등을 그린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갑작스러운 콜름의 절교 선언으로 관계가 급속히 악화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형제의 갈등으로 아일랜드 역사를 비유했다면, 이 작품은 친구 간의 갈등으로 그 비극을 보여준다.
식민 지배, 내전이라는 크나큰 역사적 고통을 겪은 한국과 아일랜드. 그 과정에서 남겨진 독립의 기록과 기억, 내전의 상흔은 다양한 형태로 남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직관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 등을 감상하며 양국의 역사를 다시 한번 새기고 기억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