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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관련 회고록의 역사적 가치

특집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관련 회고록의 역사적 가치

— 글. 예지숙(숙명여자대학교 HK연구교수)

회고록이라는 역사의 창

회고록은 ‘지나간 일을 어느 시점에서 돌이켜 생각한 기록’으로 개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서술한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적·사회적으로 중요한 일보다 개인적인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게 마련이다. 개인을 중심으로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이켜본다는 점에서 자서전과도 비슷하므로 자서전은 넓은 의미에서 회고록의 범주에 포함된다.
사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회고록은 역사에 다가가는 데 하나의 길잡이가 된다. 무엇보다 회고록에는 국가에서 발행하는 공문서 그리고 신문, 잡지 등의 미디어를 통해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회고록을 통해서 국가나 민족, 계급이 주인공이 되는 거시적 시각에서 볼 수 없는 존재를 살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자신의 삶이 변변치 않다고 느끼는 일반인이나 역사에서 잘 설명되지 못하는 여성의 삶을 살피는 데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을 담은 회고는 더할 나위 없이 요긴하다. 마지막으로 범접할 수 없는 영웅호걸의 손에서 독립운동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할 때, 회고록의 가치는 더욱 커 보인다. 우리는 회고록을 통해서 이 역사의 변곡점에서 행한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행동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회고록의 역사적 가치

하지만 사적인 기록물인 회고록은 ‘양날의 검’이다. 이를 활용해서 역사의 공백을 메꿀 수 있지만 잘못 쓰면 역사를 왜곡할 수도 있다. 흔한 예로 개인의 기억에 의존하는 특성 때문에 날짜, 인명, 지명 등의 정보에 오류가 자주 발견된다. 그러나 회고록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단점과 한계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회고록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공적 기록과 대조하고 다른 회고들과 교차로 검증하는 ‘사료 비판’의 과정을 거친다. 판결문과 회고록, 회고록들 간에 사실관계가 어긋나면 여러 회고를 교차 검증하면서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
최근 회고록에 대한 관심은 대중과 역사 연구자의 관심이 점차 독립운동가의 생활과 일상적인 삶으로까지 확대되는 추세에 따라 더욱 커져 가고 있다. 무엇보다 개인의 삶을 파악하는 데 어느 자료보다 쓰임이 크다. 검거·취조·재판과 수형생활도 독립운동가의 회고록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또 그간 역사서술에서소외되었던 존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도 회고록의 자료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재평가되고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살피는 데도 회고록은 큰 역할을 한다. 여성들은 독립운동가의 아내, 딸로서 가장 역할을 하고 가사노동과 돌봄을 전담했기 때문에 공적 자료를 중심으로 했을 때 없는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여성 회고록은 생활공간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가사노동, 육아, 시부모 봉양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구체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회고록의 발간 양상

독립운동가의 회고록은 언제부터 세상에 나왔을까? 해방 직후에 김구의 『백범일지』(1947) 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나왔고1 이후 저명한 독립운동가 신숙의 『나의 일생』(1963), 장준하의 『돌베개』(1971), 이범석의 『우둥불』(1971),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의 『서간도 시종기』(1975), 조경한 『백강회고록』(1979) 등이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세상에 나왔다. 1980년 이후에는 더 많은 회고록이 출간되었으며 국가보훈부, 독립운동사연구소와 같은 국가기관이 발행한 회고록들도 속속 등장하였다.
회고록의 간행 주체는 개인, 동지회와 같은 단체, 각종 기념회 등의 사회 부문, 그리고 국가보훈부나 독립기념관과 같은 국가기관이 있다. 개인이 발행했다고 해도 온전한 개인이 있는가 하면 김구와 같이 정치세력의 대표도 있기 때문에 발행의 의미를 동일하게 볼 수 없을 것이다. 또 신문과 잡지에서 독립운동가의 수기나 회고를 연재하고 출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1975년에 발간된 『회상의 황하-피어린 독립군의 항쟁 수기』는 1969년에서 1970년까지 『사상계』에 연재되었던 것을 발간한 것이다. 신문, 잡지에서 독립운동가의 연재를 싣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들의 이야기가 사회적일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의미를 획득했다는 이야기로 풀이할 수 있다. 또 어느 시점부터 국가기관이 주도하여 구술 작업을 진행하고, 회고록을 발굴·수집하게 되었던 것도 간과할 부분은 아닌 듯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회고록의 사료적 가치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회고록이 적지 않지만 지면의 한계상 임시정부의 활동에 관련한 회고록을 중심으로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내용은 무엇인지 개괄적으로 집어보겠다.2
가장 대표적인 회고록으로 김구의 『백범일지』가 있으나 너무나 유명한 백범일지에 대한 언급을 줄이는 대신 다른 글들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1930년대에 작성된 현순(1890~1968)의 『현순자사』에는 임시정부 수립과 통합운동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적혀있다. 신숙(1885~1967)의 『나의 일생』은 1963년에 출간되었는데 일경에 체포되어 독립운동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집필된 것을 보완한 것이다. 김자동(1928~2022)도 『상하이 일기 : 임정의 품안에서』(2012),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2014)이라는 회고록을 차례로 펴냈다. 그는 임정에서 활동한 김의한과 정정화의 아들로 태어나자마자 임시정부의 일원이 된 임정의 2세대 운동가이다. 회고록에는 김구, 이동녕, 이시영, 차리석 등 임정 관련 인물에 대한 기억이 빼곡하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소년대에서 활동 등 독립운동가의 아이들에 대한 내용이 있어 흥미롭다. 안창호의 비서실장을 지낸 구익균(1908~2013)은 『(구익균 회고록) 새 역사의 여명에 서서 : 격동속의 일생을 돌아보며』를 남겼다. 안창호와 흥사단, 상하이의 한인사회, 한국독립당과 중산대학의 한인 학생들에 관한 증언이 담겨져 있다.


유자명 『나의 회억』
김자동 『상하이 일기』
아나키즘 운동가 유자명(1894~ 1965)은 『나의 회억』(1999)과 이강훈(1903~2003)의 『이강훈 역사 증언록』(1994)이 있으며, 아나키즘 계열의 독립운동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담겨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자명과 의열투쟁을 한 유기석(1905~1980)은 『유기석 회고록 : 삼십년 방랑기』(2010)를 남겼다. 독립운동가 김창숙의 시문집 『심산유고』에는 73세에 집필한 회고록 『벽옹칠십삼년회상기』가 포함되어 있다.

한국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회고록도 적지 않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총사령관 지청천은 1953년에 남긴 회고에서 낙양군관학교 및 광복군에서의 활동을 서술하였다.3
1951년에서 56년까지 쓴 지청천의 친필 일기가 다행히도 남아있는데 독립운동가의 의식이 담긴 일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장 및 제2지대장을 역임한 이범석은 1966년에 『사실의 전부를 기술한다: 역대 주역들이 실토한 미공개 정치이면 비사』와 1969년 『신동아』에 광복군 활동, 중국 군대에서의 활동, 낙양군관학교 등을 회고하였다. 1971년 발간된 『우둥불』에는 청산리 전투의 경험이 담겨있다.

학병 출신 대원들이 남긴 회고록으로 장준하의 『돌베개』(1971), 김준엽의 『장정』 1, 2, 김문택의 『새벽으로 가는 길』(1995) 등이 있다. 『장정육천리 : 한광반 학병 삼십삼인의 항일투쟁기』(1979)는 장준하, 김준엽과 같이 일본군을 탈출해서 충칭으로 간 학병들의 수기를 한데 모아 출간한 것이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회고록에 나타난 독립운동은 생각보다 다채롭다. 『제시의 일기』는 최선화(1911~2003)와 남편 양우조(1897~1964)의 공동 육아일기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한도신(1895~1986)의 회고록 『꿈갓흔 옛날 피압흔 니야기』에는 상하이 시절 임시정부의 생활상이 잘 담겨져 있다. 지청천의 자녀인 지복영(1919~2007)의 『민들레의 비상 : 여성 한국광복군 지복영 회고록』(2019)이 있다. 이은숙(1889~1979)의 『민족운동가 아내의 수기 : 서간도 시종기』는 발표되자마자 독립운동의 기록으로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최근에는 여성사 방면에서도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허은(1907~1997)의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 독립투사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 회고록』(1995)은 만주 독립운동지에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양제경

제시의 일기

회고록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

일제하 36년은 20대의 혈기왕성한 청년을 현실과 타협하는 보수주의자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독립운동은 시시각각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언젠가는 승리하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사적 경험에 입각한 회고록은 이 세월을 살아낸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창구가 되며 이를 통하여 이들이 느꼈을 두려움, 분노, 기쁨, 희망, 외로움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또 회고록을 통해서 우리는 독립운동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1. 『백범일지』 판본은 김구가 1929년과 1942년에 탈고한 친필본과, 필사본 2종, 1947년에 이광수의 윤문을 거쳐 공식적으로 출간된 국사원본의 4가지가 있다. 김구의 아들 김신이 1994년에 친필본 『백범일지』를 공개하였고 이를 간행한 『친필을 원색 영인한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가 간행되었다.

2.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회고록은 여기서 개별적으로 언급한 이외에도 다수 존재하는데, 이에 관하여는 상세히 소개한 손염홍의 연구를 참고하기 바란다. 孫艶紅, 「중국 관내지역 독립운동 관련 회고록 현황과 사료적 가치」, 『한국근현대사연구』 제99집, 2021.

3. 인생회고록: 광복군과 나의 투쟁 , 『희망』, 1953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