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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역사를 기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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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다양한 사업의 내용과 메시지를 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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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독립신문」

다양한 사업의 내용과 메시지를 담아내겠습니다.

우리 기념관은 지난 3·1절에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기념관의 이야기를 국민과 함께 나누기 위해 정기 간행물을 계획하였습니다. 명칭을 정하는 과정에서 국민 여러분의 선택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독립신문’이었습니다. 호응이 높았던 이유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펴냈던 기관지가 바로 ‘독립신문’이었기 때문이라 짐작합니다.
우리 역사에 독립신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1896~1899년 서재필이 앞장서서 펴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입니다. 그래서 약간 혼동이 있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 시절, 특히 1920년대 전반기에 독립신문을 활발하게 펴냈고, 이동시기에 중단했다가 1940년대 들어 충칭시절에 다시 간행하였습니다. 국내로 돌아온 뒤에도 국내판 독립신문이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기념관에서 펴내는 간행물은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당시 독립신문에는 다양한 내용이 실렸습니다. 임시정부(정부)와 임시의정원(의회)의 회의 내용이나 인사발령, 헌법제정과 개정, 법률과 규정 제정, 의결사항, 국내외 독립운동 소식, 국제 시사 문제, 항일의식을 드높이는 시·소설·수필 등 문학작품, 출판 소식이나 사람을 찾는 광고 등 다양한 내용이 게재되었습니다. 이를 보노라면 망명지에서 펼친 독립운동의 성과와 구성원들이 겪은 고난의 길이 오늘의 일인 듯이 느끼게 됩니다.
우리 기념관은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발전해나간 국가사의 정맥을 정리하고 확인하는 공간입니다. 3·1독립선언 글머리에서 우리가 ‘독립국’임을 선언했고, 그렇게 선언한 ‘독립국’ 이름을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정했습니다. 황제가 아닌 국민이 주인인 사회, 이는 한국사 최초의 민주공화정 성립을 뜻하고, 군주가 아닌 민주사회요, 시민사회이자 근대국가 건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3·1운동을 시민혁명에 견주고 그렇게 부르자는 주장이 나왔고, 또 설득력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서 1948년 제헌헌법은 1919년 대한국민이3·1운동의 뜻을 수렴하여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이것을 계승하여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전문에 명시했습니다. 또 1987년에 제정된 지금의 헌법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기념관은 바로 헌법에 명시된 그 정신을 반듯하게 세워 국민에게 알리는 데 설립 목적을 둔 공간입니다. 이 목적을 이루어내기 위해 앞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쳐나갈 것이고, 그러한 내용과 메시지를 ‘독립신문’ 에 담아내겠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현지에서 고난의 과정에서도 그 투쟁과 정신을 담아낸 것을 되새기면서, 헌법정신을 분명하게 세우고 알리는 일에 힘을 쏟겠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개관한 올해에는 두 차례 발간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그 횟수를 늘려 계간이나 격월간으로, 더 나아가서는 월간으로 발간할 수 있도록 한 걸음씩 발전시키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따뜻한 애정과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대한민국 104년(2022) 6월 30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장 김희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