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메뉴버튼 퀵메뉴버튼 최상단으로 가기

소장품

빛과 소리로 선열의 숨소리를 더듬다

소장품

빛과 소리로 선열의 숨소리를 더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
– 돌아오기 위해 떠난 4,000km’ 미디어아티스트 한계륜
역사의 물줄기가 되어 유유히 흐르는 건곤감리.
그 위에는 한반도 옛 지도와 선열들의 흑백사진이 오버랩되어
임시정부를 향한 위대한 여정을 보여준다.
미디어아티스트의 손을 거친 100년 전
선열들의 발자취가 빛과 소리를 통해 생생하게 재현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임시정부

“작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전달받은 것이 임시정부 이동의 시기였어요. 27년이라는 시간 동안 임시정부를 수립한 선열들은 군사를 모아 우리나라를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셨잖아요. 가혹한 식민지배를 겪으면서도 선열들은 뭐랄까, 마치 종교적인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임시정부를 지키셨던 거죠. 선열들의 그 숭고한 신념을 저는 27년의 역사와 4,000km를 이동한 여정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개관하기 1년 전, 작품 의뢰를 받은 한계륜 작가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역사공부였다. 도서관에서 역사 서적을 찾아보고 학예사들로부터 임시정부에 관한 수업을 받으면서 작품을 차근차근 구상해나갔다. 그리고 그동안 몰랐던 역사적 사실도 함께 알게 되었다.
“전에는 임시정부가 말 그대로 임시 조직인 줄로 알았어요. 실제로는 3·1운동을 계기로 한민족 최초의 민주공화정 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수립됐으며, 정부가 하는 일을 그대로 수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을 선포했지만 끝내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긴 후 사람들은 새로운 왕조를 세워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대신 대한민국을 수립했어요. 당시 식자들과 지도층은 백성을 주인으로 하는 국가, 말하자면 국민의 정부를 세우는 엄청난 일을 해낸 거였어요.”
두꺼운 역사교과서를 보더라도 일제식민지 시절은 턱없이 작고 빈약하다. 현재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근대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탓에 한계륜 작가 역시 자세한 역사적 내막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돌아오기 위해 떠난 4,000km’를 제작하면서 역사적 정황을 새롭게 인식하였다.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한국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열차를 타고 국제도시 상해로 떠납니다. 당시 매우 긴박한 상황이었음에도 선열들은 긴밀하고 체계적으로 활동하셨어요. 임시정부의 이념과 사상을 확립하고 내각을 수립하기 위해 열띤 토론을 벌이셨죠. 하지만 중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밀리는 바람에 현지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고, 그 때문에 당시 임시정부의 사료와 유물이 대부분 손실됐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안타깝게도 후손들은 이렇다한 사료 없이 기록을 통해서만 선열들의 업적을 들여다봐야만 하는 현실이 된 것이죠.”

주제는 선열들의 마음을 깨닫는 것

“임시정부 27년의 과정은 역사책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잖아요. 작품을 통해 그 역사적 사실을 하나하나 알려주기보다는 역사책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선열들 한 분, 한 분의 업적을 기리고 임시정부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바로 후세대인 우리가 임시정부기념관을 찾아오는 이유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고민했지만 작품을 구상하면서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이죠.”
여러 고민 끝에 한계륜 작가는 원래의 화두였던 임시정부 27년의 역사와 그 여정에 포커스를 맞췄다. 끝과 시작을 구분할 수 없는 구성을 어느 정도 기승전결을 알 수 있도록 수정하고, 임시정부 의정원에서 쓰인 태극기와 옛 지도로 선열들의 발자취를 형상화했다.
“동그랗게 쏟아지듯 흐르는 불빛들은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분들의 얼굴이에요. 기록에는 없지만 그곳에서 활약하신 모든 무명의 선열을 빛으로 표현했습니다. 관람객들이 전시실 내부를 걷는 시간이 25초쯤 되는데 관람객들이 이동하면 그 속도에 따라 빛이 이동하다가 관람객들과 함께 똑같이 멈출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렇게 빛이 쏟아지다가 거울을 바라보면 다시 반사되어 이미지가 양쪽으로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임시정부 선열들의 마음을 관람객들이 시간을 거스르며 느낄 수 있도록 한 구성입니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기념관으로 거듭나길

한계륜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영달이 아닌 나라의 독립을 위해 고난을 무릅쓴 임시정부선열들의 교훈을 되새기며 지금의 나를 잊게 해준 근현대사에 대해 다시금 큰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계기였다고. 그러면서 임시정부기념관이 자랑스러운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서대문형무소가 개관할 무렵 미술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어요. 아픔의 장소여서 그런지 분위기가 무척 슬프고 암울했었죠. 예술가로서 저는 임시정부기념관이 나라를 잃은 슬픔의 장소가 되기보단 식민지 극복의 역사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서대문형무소와 함께 이곳이 모든 선열들의 자랑스러운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