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금란지교, 위대한 동행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특별전
우리 기념관에서 열리는 두 번째 특별전시는 올해가 한중수교 30주년이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기획하였다. ‘금란지교金蘭之交’는 두 사람의 깊은 우정을 뜻하는 말로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보여주는 키워드이다. 두 나라가 세계사의 정세 속에서도 연합하고 외교 관계를 함께 수립하는 일련의 과정은 자못 ‘위대하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금란지교, 위대한 동행>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주제로 펼친 두 나라의 사업을 살펴보는 전시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에서 수립되었고, 중국에서 활약하였기 때문에 중국에 현재까지도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한 이후 1945년 광복을 맞을 때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람들은 중국에서 터를 잡아 임시정부 조직을 운영하였고, 또한 이곳에서 생로병사를 겪으며 본의 아니게 타국에서 죽음을 맞기도 하였다. 1992년에 수교된 이후 그들이 남긴 흔적을 다시 찾을 때 주목한 점은 청사 건물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유해를 우리나라로 봉환하는 과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양국은 가까운 역사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연구하면서 공동 조사의 성과를 꽃피웠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 내에 여덟 개의 도시를 다니면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명맥을 이어왔다. 임시정부는 여러 청사를 사용하였지만 현재까지 사용 여부가 확실하고, 복원이 이루어진 경우는 세 개의 청사가 유일하다. 세 개의 청사는 도로나 지역 이름을 따서 중국 상하이에서 사용하였던 임시정부 청사는 ‘보경리 청사’가 있고, 항저우에는 ‘호변촌 청사’가 있으며, 충칭에는 ‘연화지 청사’가 남아 있다. 모두 1992년 한중 수교 이후에 본격적으로 복원이 추진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가까운 상하이 청사가 가장 먼저 복원되기 시작되었다.
상하이 보경리 청사는 상하이에서 사용하였던 청사로 이곳에서 김구 주도로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이 조직되었고,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白凡逸志』를 저술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로 임시정부가 상하이를 떠나게 되면서도 건물의 임대를 한인에게 넘겨주었고, 그 후에도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충칭 연화지 청사는 광복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이다. 1990년대에는 한국광복군 출신의 생존자가 많았기 때문에 복원에 이들의 증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대체로 광복절을 앞두고 개관한 두 청사는 우리나라 독립을 향한 마지막 얼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복원 및 전시되었다.
1부에서는 지금으로는 가기 어려운 중국 상하이와 충칭 청사를 볼 수 있도록 입구를 재현하여 꾸며보았고, 모형을 중앙에 배치하여 청사에 대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또한 각 청사에서 활약한 사항을 유물로 볼 수 있게 하였는데 상하이 마당로 청사 코너에서는 ‘백범일지 초판본’을 비롯하여 ‘한인 애국단 이력서’ 등을 확인할 수 있고, 충칭 청사 코너에서는 충칭 청사의 옛 모습을 수록한 잡지 ‘국제보도Pictorial Korea’와 충칭 청사의 형상을 묘사한 ‘장정長程 초판본’을 직접 만날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던 인물과 그 가족들은 중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면서 이곳에서 죽음을 맞기도 하였다. 그들은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조국을 떠났으나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1992년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이후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중국에서 죽음을 맞아 무덤이 마련된 요인들의 유해를 봉환하는 사업에 착수하였다. 1993년 상하이 만국공묘萬國公墓에 안장된 다섯 명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유해의 봉환을 필두로 현재까지 144위의 선열先烈이 조국으로 돌아왔다.
2부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타국에서 죽음을 맞은 내용,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199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유해가 봉환되는 과정을 순서대로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유물은 20대의 젊은 독립운동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장례 사진인 ‘윤현진尹顯振 국장 사진’과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조시 등이 있다. 또한 1993년에 중국 상하이 만국공묘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5위가 봉환되는 과정을 신문 기사,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 인접한 지역에 위치하며 고대로부터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다방면에 걸쳐 서로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이념과 정책의 차이로 인하여 가까운 역사인 근대사를 함께 연구하지 못하였다. 1992년 한중수교는 학계 교류에 있어서도 큰 전환점이 되었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역사 정립과 양국의 교류 관계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조명되었고, 중국에서 활약한 우리나라의 인물과 중국 주요 정치인과 교류된 사항도 활발하게 연구되었다.
한국과 중국의 공동 조사하거나 연구한 내용은 대상별, 주체별로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연구 대상별로는 중국 내 독립운동 사적지를 조사한 내용, 중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에 대한 인물 조사, 한국과 중국의 외교사 · 경제사 등 주제별 연구 등이 있다. 연구 주체별로는 한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국제 학술대회를 열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하여 조명하기도 하였고, 중국인 학자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조사를 펼쳐 그들의 눈으로 본 근대사를 살펴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한중 공동 학술대회의 경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교류의 장으로 상대방의 시선으로 본 근대사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