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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재복원의 현장에서

특집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재복원의 현장에서

─ 글. 장헌덕(한국전통문화대학교 명예교수)

복원 사업에 참여하기까지

1992년 8월 한중 수교가 이루어질 당시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현재 국립문화재연구원) 소속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해 10월 중국 길림성 집안현의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한 고구려 유적을 조사하기 위해 20일간의 출장을 떠나게 되면서 중국과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귀국하던 길에 책에서만 보던 자금성과 명 13릉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는데,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고건축 전공자로서 중국의 고대 건축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귀국 후 베이징北京 청화대학淸華大學 건축대학원으로 박사학위 과정을 진학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찾아보았지만 당시만 해도 공무원이 장기간 현직을 떠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16년간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1995년 3월 유학길에 올랐고 4년 뒤인 1999년 청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그 후 문화재청 전문위원실에 근무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다시 공직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문위원실 근무를 시작할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이하 임정 청사) 관련 업무는 윤홍로 선생님의 담당이었다. 윤홍로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임정 청사와 관련된 업무를 넘겨주었고 그렇게 임정 청사 재복원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2000년 초여름, 독립기념관의 요청을 받고 임정 청사를 복원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정말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첫 출장길에 올랐다.

보경리 청사 정면도

©독립기념관

현장에서 만난 상하이上海 보경리普慶里 청사

보경리 청사 단면도

©독립기념관

상하이 보경리의 임정 청사는 당시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들이 사용했던 여러 건물 중의 하나이다. (처음으로 태극기를 내걸었다고 알려진 하비로霞飛路에 위치한 임정 청사의 경우 이미 도시화 확장과정에서 철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보경리 청사는 우리나라로 보면 연립주택에 해당하는 3층짜리 주택으로 수십 호의 건물이 줄지어 붙어 있는 형태이다. 보통 1층은 주방, 2층은 거실, 3층은 침실로 수직 동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상하이 보경리 임정 청사 재복원 현장에 도착했을 때, 청사의 상태는 매우 노후화되어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청사 건물의 보호를 위해 중국 정부와의 어려운 협의 끝에 청사로 사용했던 4호 건물의 좌 · 우측에 위치한 3, 5호 건물을 매입해둔 상황이었다. 당시 현장에는 이미 가설비계가 설치되어 있었고, 공사 역시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둥, 창호 등 많은 건축 부재들이 해체되어 현장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현장 소장에게 부재 상태를 확인하고 중요 부재는 수리해서 다시 사용해야 한다고 했지만 현장 소장은 철거된 부재는 이미 사용 불가능한 부재라고 하였다.

문화유산을 복원할 때는 관계 전문가들이 모여 현장지도회의를 하게 된다. 이 회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재사용 부재, 보존 처리 후 재사용이 가능한 부재와 부후腐朽나 구조적 문제로 사용할 수 없는 부재의 교체를 결정한다. 이러한 과정 역시 유네스코 협약에서 규정한 문화재 보호의 기본 원칙이다. (한국의 경우 1988년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에 가입하였다.)
중국에도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법과 같은 문물보호법이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문화재도 상당히 많다. 그리고 문화재를 보수할 때 유네스코에서 규정한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 협약’에 따라 완전성과 진정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완전성이란 유산의 가치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제반 요소로 법적, 행정적인 보호 제도나 설정된 완충 지대 등을 의미한다. 진정성이란 문화유산의 재질이나 제작 기법, 용도, 기능 등의 다양한 속성에서 원래의 가치가 진실되고 신뢰성 있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상하이 보경리 청사는 이미 1990년 2월 19일에 노만구盧灣區 문물보호단위 제 174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현재는 노만구와 황포구黃浦區가 통합되면서 황포구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당시 현장 소장에게 “나 역시 중국의 문물보호법을 알고 있고 설계 도면과 관련 문서가 확인되지 않으면 공사를 중단시키겠다.”고 강수를 두었다. 그런데도 소장은 관련 문건은 보안사항이라고 보여주지 않았고 결국 공사를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다. 공사를 중지시킨 날 저녁 중국 측 문화재 담당자들이 찾아와 개소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며 공사 재개를 요청해왔다. 이에 서류는 보여주지 않아도 좋으나 해체한 중요 부재들은 모두 가져오라고 요구했고 결국 다음날 오후 해체한 부재들을 다시 현장으로 가지고 올 수 있었다. 이후 4호 건물의 부재는 가능한 수리하여 모두 재사용하도록 했고 3호, 5호 건물의 부재는 일부 교체하여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4호 건물의 좌 · 우측에 위치한 3, 5호 건물에 4호 건물의 화재를 방지하는 방화벽을 설치하고 전시실과 안내실을 구성하여 지금의 확장된 모습이 되었다.

보경리 청사 재복원 현장

보경리 청사 재복원 후

©독립기념관

안개의 도시, 충칭重慶에서 만난 연화지蓮花池 청사

충칭 연화지의 임정 청사는 상하이 마당로 청사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크고, 약간 경사진 지형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계단을 따라 좌 · 우측으로 건물들이 놓여 있는 형태이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입구 좌측에 있는 진열관의 내부 배치와 그 진열관 앞의 배수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충칭은 매우 습하고 여름이면 거의 맑은 날을 보기 힘들 정도로 안개로 덮여 있는 도시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배수로의 상태를 보았을 때 일부를 보수하는 것만으로는 장마철에 도저히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되었다.

연화지 청사 정면도

연화지 청사 전체 평면도

©독립기념관

연화지 청사 전체 입면도

©독립기념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사의 가장 위쪽에서부터 배수로를 모두 교체하고 계단과 바닥을 고쳐야만 했다. 또한, 입구의 정문과 난간 역시 노후화되어 상당히 위험한 상태였기에 이 역시 수리가 필요했다. 그런데 추가 공사를 하려면 당해 예산을 초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근본적인 수리를 위해서 금회 공사에서 조금 더 예산을 확보해서 공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고 이 의견이 받아들여지면서 청사 주변의 공사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예산을 초과하면서까지 공사를 진행하여 청사 주변은 말끔하게 마감되었지만, 당시 연말까지도 초과한 나머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설날 명절까지 공사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서 시공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충칭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진열관의 가賈관장이 사무실에 나오지도 못하는 고충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그런 고충들이 있었기에 임정 청사가 더 잘 보존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연화지 청사 재복원 전 계단

연화지 청사 재복원 후 계단

연화지 청사 재복원 전 정문

연화지 청사 재복원 후 정문

©독립기념관

끝나지 않은 임시정부 청사의 보존

상하이는 현재 중국의 경제를 이끌어 가는 최고의 국제상업도시이다. 특히 복원된 임정 청사가 위치한 마당로 주변은 신천지 구역으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변해가고 있다. 불과 수년 전에도 이 일대를 개발하자는 프로젝트가 추진되었고 당시 대한민국 정부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임정 청사를 지켜냈다. 하지만 이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계속해서 개발을 바라고 있다. 이러한 요구 속에서 임정 청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오늘만의 문제가 아닌 계속되는 진행형일 것이다.
한편 충칭의 경우 매우 습하고 여름이면 맑은 날을 보기 힘들 정도로 안개로 덮여 있는 도시이다. 충칭 연화지 임정 청사가 있는 주변은 한가한 편이지만 아파트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 아파트들은 노후화되어 언젠가는 철거되고 새롭게 신축하게 될 것이다. 임정 청사 주변을 좀 더 쾌적한 공간으로 꾸미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임정 청사를 복원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임정 청사를 복원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모두가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존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본고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진행한 장헌덕 교수의 청사 재복원 구술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하여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