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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

화폭에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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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담다

2023년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의 하반기 특별전 〈물결;파동, 미디어에 나타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가 초상화 6점을 전시하고 있다. 10년째 독립운동가의 초상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주환선 작가. 그는 왜 독립운동가를 그리게 되었을까.

— 주환선 작가를 만나다

본인을 ‘동닙’이라는 별명으로 소개해주었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개인적인 별명으로 쓰는 말이다. 독립운동할 때 독립을 발음할 때 ‘동닙’으로 들린다. 한자로는 독립과는 다른 의미이다. 모일 동에 모이는 모양 닙을 쓰는데 나를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서 호처럼 사용하고 싶은 말이다.

소중한 작품을 흔쾌히 출품해주기 어려웠을 듯하다.
어떤 마음으로 출품을 결심했는지, 이번 전시가 본인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궁금하다.

올해가 나에게 정말 운이 좋은 해이다. 거짓말 같은 게 2022년까지만 해도 나는 무명 작가였다. 그런데 부산에 동산 김형기 선생의 기념관이 건립되면서 내 일러스트를 온라인 홍보에 사용하고 싶다고 해서 흔쾌히 그러시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일러스트를 보고 연락이 온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가, 역사를 알리려는 사람인가?’라는 지점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그림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그림이나 일러스트를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때마침 임시정부기념관에서 출품 제안을 주셨다.
독립운동가 그림 작업을 하며 공부를 하다 보면, 소위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나온다. 점점 모르는 분들이 나오는데, 그분들이 다른 다양한 독립운동가들과 연결이 되어 있고 하다 보니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자연스레 늘 관심이 있었다. 원래 밖에 잘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임시정부기념관에는 한번 꼭 가보고 싶었다. 마침 가보고 싶었던 곳에서, 나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기도 해 방문했는데 직접 가서 보니 기념관도, 전시 내용도 너무 좋았다.

10년째 독립운동가의 초상화와 일러스트를 그려왔다고 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원래 역사를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좋아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집에서 늘 보시던 게 역사 다큐멘터리였다. 나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역사책들도 많이 읽고 그림도 역사 그림만 그리곤 했다.
그러다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시절, 안중근 의사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당시 다큐멘터리가 인상 깊게 남아서인지 한국에 돌아와서 그림 작업을 시작할 때 모델을 고민하다 문득 독립운동가가 떠올랐다. 그렇게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처음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시리즈 정도로 10개 정도의 작품만 하고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큰일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를 몇 프로라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초상화에 눈을 그리지 않는다고 들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처음에는 눈을 그리려고 했다. 그런데 독립운동가의 사진이 워낙 오래되다 보니 인쇄 상태나 화질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원래 그림에서 눈을 그릴 때는 조금 살아 있는 것처럼 그려야 하는데, 사진처럼 그리려고 하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의 눈을 보면서 수없이 작업을 반복했다. 그런데 작업을 할 때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리는 대상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계속 수정하고, 또 수정하다 보니 문득 ‘이 눈은 내가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시를 열었을 때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리지 않은 것도 있다. 실제로 눈을 그리지 않았을 때 독립운동가들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그런 분들이 전시를 보고, 이 독립운동가가 누구라는 것을 알았을 때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느꼈으면 하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주환선

이번 전시에 총 6점의 독립운동가 초상화를 출품해주었다.
각각의 독립운동가들은 성별부터 행적, 나이 등 서로 다른 점이 많다.
그들의 어떤 면을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싶었나.

독립운동가들을 그리는 작업을 할 때, 그들의 ‘마지막 한 줄’로 작업을 시작한다. 바로 그들의 삶의 마지막 순간, 즉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유화의 경우 작업할 때 기본적으로 ‘슬픔’이 베이스가 된다. 그와 동시에 지금을 편한 삶을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죄송함, 부끄러움을 작품에 나타내고 싶었다.
예시로 정정화 선생을 작업할 때 이미 일곱, 여덟 분 정도의 작업을 한 상태였다. 그 때, 문득 ‘나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부끄럽더라도 살짝 고개는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눈 한쪽을 비대칭으로 그려 넣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정정화 선생을 공부하다 보니 내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뒤로 다시 눈을 아예 그리지 않았다. 아직 눈을 그리기에는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봉창 의사는 남아 있는 사진 자체가 많지 않았다. 그 사진들도 흔들리거나, 빛이 반사되었거나, 수감 되었을 때나 일본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 그런 사진들이었다. 그래서 합성으로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이봉창 의사 그림은 의거에 나서기 전 마지막 모습이라고 하는 활짝 웃는 모습의 사진을 모본으로 사용했다.

작업할 때 힘든 점은 없는지?

독립운동가 거의 대부분이 사진이 없다. 기록에서는 분명 중학생 시절에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고 하는데, 찾아보면 노년 시기의 사진 기록만 남아계시는 분들이 많다. 나는 상상화를 그리는 게 아니라 기록을 보고 내 감정을 그려낸다. 그래서 사진 자료가 없는 경우 가장 큰 어려움을 느낀다. 또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흔히 매일 보는 사진이 아닌, 내가 찾아낸 사진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자료가 없다 보니 그런 부분이 어렵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 SNS를 통해 역사를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분들과 연이 닿는 경우도 있다. 그분들이 본인의 연구 성과나 찾은 자료들을 올려주기도 하는데, 그 자료들에서 괜찮은 사진이 있으면 작업해야 할 목록에 추가해두기도 한다.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은 무엇인가?

유화 작업은 중단한 상태이지만, 일러스트는 지금까지 작업한 것이 약 180명 정도 되는데 수정하고 보완하기 위해 1번부터 다시 작업하고 있다. 일러스트로 1,000명 정도를 채우게 되면 독립운동가 도감 같은 책을 출판해보고 싶기도 하다.
내년에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갈 예정이다. 미국에서도 독립운동가 작업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수많은 미국인이 있다. 그들을 내용으로 활동을 이어가서 이주 한인 3세대, 4세대 아이들에게도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
계속 독립운동가 작업을 하고, 쉽지는 않겠지만 서울도 왔다 갔다 하면서 전시를 열 계획도 있다. 갑자기 다른 엉뚱한 그림을 그리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 마음으로는, 내가 죽기 전까지 아마 독립운동가 작업을 계속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