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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다룬 한국영화의 시대별 양상들

특집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다룬 한국영화의 시대별 양상들

— 글. 함충범(한국영상대학교 영화영상과 교수)

©한국영상자료원

<아아 백범 김구 선생>, 전창근, 1960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첫 영화로 공인되어 있는 작품은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공개된 <의리적 구토>라는 연쇄극連鎖劇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보다 조금 이른 동년 9월 11일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한국영화의 역사와 임시정부의 역사가 출발 지점에서 시기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수십 년간 식민지 시대가 이어졌으므로, 영화 속에 임시정부가 등장하거나 다루어지는 일은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기점으로 상황이 전도되었다. 1946년부터 남한에서는 극영화 제작이 재개되었는데, 그 경향을 주도한 것은 조국 독립을 위해 몸 바친 민족 영웅을 형상화한 일련의 작품들이었다. 해방 후 최초의 극영화인 이구영 감독의 <의사 안중근>(1946)을 비롯하여 김영순 감독의 <불멸의 밀사>(1947), 윤봉춘 감독의 <의사 윤봉길>(1947), 최인규 감독의 <죄 없는 죄인>(1948), 윤봉춘 감독의 <유관순전>(1948), 노필 감독의 <안창남 비행사>(1949)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 가운데 <불멸의 밀사>는 이준 열사를, <죄 없는 죄인>은 주기철 목사를 대상으로 하였던 바, 이들 작품은 동일하게 죽음을 불사하고 항일 정신을 행동으로 옮긴 역사상의 실존 인물을 영화 속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들 작품 속 인물 및 사건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관되어 있었던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에 상하이사변 3개월 후인 1932년 4월 29일 훙커우공원虹口公園에서 일본의 유력 인사들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여 사상을 입힌 윤봉길(1908~1932)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의사 윤봉길>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의 인생 전체가 영화 속 이야기 줄거리를 이루었겠지만, ‘거사’ 직전 임시정부 산하 조직인 한인애국단을 이끌던 김구와의 만남 과정이 중요한 사건으로 배치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통해 한국영화와 임시정부의 관계가 ‘해방’이라는 역사적 상황의 변화 및 정치성과 상업성을 아우르는 영화의 대중적 성격을 기반으로 맺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양상이 재연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여전히 많은 수를 차지하지는 못하였지만,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을 중국 상하이 또는 과거 일제강점기로 설정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인물이나 사건 등을 서사의 구성 요소로 활용하는 작품들이 다시금 나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때 역사적 실존 인물 및 실제 사건을 담은 영화들도 하나의 지류를 형성하였다. 포문을 연 작품은 전창근 감독의 <아아 백범 김구 선생>(1960)이었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서거하는 첫 장면 다음으로 11주기 추도식 실황이 화면을 장식한 뒤, 영화는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청년 시절부터 1945년 11월 23일 미군 수송기를 타고 환국하는 순간까지 이어진 김구(1876~1949)의 독립운동 여정을 2시간 24분여의 긴 시간에 걸쳐 소개한다.
<아아 백범 김구 선생> 이후에도 영화 속에 임시정부가 등장하거나 다루어지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 그리고 이들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김구’가 극 중 중심인물로 설정되었다. 관련 작품으로는 이용민 감독의 <일본제국과 폭탄의사>(1967)와 조긍하 감독의 <상해임시정부>(1969) 등을 꼽을 만하다. <일본제국과 폭탄의사>에서는 한인애국단 소속으로 1932년 1월 8일 도쿄東京에서 히로히토裕仁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 이봉창(1900~1932)의 사쿠라다몬櫻田門 의거와 윤봉길의 훙커우공원 의거가 주요 사건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김구가 주요 인물로,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가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상해임시정부>에서는 이봉창, 윤봉길 등이 주변 인물로 배치된 상태에서 김구의 임시정부 활동이 이야기를 견인한다.
또 다른 지류도 생겨났다. 최경섭 감독의 <상해 리루>(1963), 황학봉 감독의 <무기와 육체>(1968), 강대진 감독의 <가로수의 합창>(1968) 등이 이에 속한다. <상해 리루>는 상하이에서 활동 중인 주인공 독립단원 한준호(박노식 분)가 바의 여급인 리루(신미림 분)의 애정 어린 도움을 받아 무기와 탄약을 한국광복군 본부까지 수송하라는 상하이 임시정부로부터 내려진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담았다. <무기와 육체> 역시 항일투사 박창호(김진규 분)가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한국독립군으로 무기를 호송하는 여정을 다루었다.
<가로수의 합창>의 경우, 일본 유학생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철우(신성일 분)와 일본인 여성 유미꼬(윤정희 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영화였다. 극 중 이철우에게 도움을 주는 윤혜숙(김지미 분)이 등장하는데, 그녀가 상하이 임시정부로부터 일본에 온 밀사로 설정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앞의 두 영화와는 달리 임시정부가 이야기 구성 요소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할 만하다. 어찌 보면 다소 모호한 설정이라 하겠는데, 동시기 한국영화 중에는 이와 유사성을 지니는 것들도 종종 발견된다.

©한국영상자료원

<상해 리루>, 최경섭, 1963

<상해의 밤>, 엄심호·이용호, 1963

<상해 55번지>, 고영남, 1965

<상해 리루>처럼 영화 제목에 ‘상해’라는 지명이 붙어 있는 작품들을 살펴보자. 엄심호․이용호 감독의 <상해의 밤>(1963), 고영남 감독의 <상해 55번지>(1965), 신경균 감독의 <0번 상해 돌파>(1967) 등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상하이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 또는 독립군으로 등장하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임시정부의 존재는 특별히 제시되지 않았다. 아울러 이와 같은 설정 방식은 홍성기 감독의 <대지의 성좌>(1963), 조긍하 감독의 <아까시아 꽃잎 필 때>(1962), 최경옥 감독의 <이대로 죽을 수 없다>(1964), 임원식 감독의 <나는 매국노>(1966), 이신명 감독의 <지평선은 말이 없다>(1966) 등의 작품들에도 적용되었다. 이처럼, 1960년대에는 인물형 및 시공간 설정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양상을 통해 영화 속 임시정부의 존재 방식이 이전에 비해 상당히 다양해졌다. 주목되는 점은, 대신에 관련 작품들의 장르적 성격이 보다 짙어져 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상당 부분 1970년대로도 이어졌다. 게다가 그 양상이 보다 다채로워지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암흑가를 전전하던 정의로운 한 인물이 일본인 폭력 조직을 처단한 뒤 임시정부로 발길을 옮긴다는 줄거리를 지닌 장일호 감독의 <뒷골목 오번지>(1970)와 중추원 참의인 부친의 뜻에 따라 판사가 된 주인공이 항일운동을 하는 동생의 탈옥을 돕고 그를 임시정부로 떠나보내는 과정을 그린 박윤교 감독의 <호피 판사>(1970) 등은 장르적 토대는 서로 달랐으나, 임시정부가 이상적인 도피처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녔다. 상하이 임시정부 소속의 독립운동가가 명월관의 기생 다섯 명의 헌신적 도움으로 임무를 완수한 후 그녀들과 함께 상하이로 향한다는 서사 구조를 취한 임권택 감독의 <장안명기 오백화>도 이야기의 마지막 지점에서는 교집합을 이루었다.
최영철 감독의 <거대한 음모>(1976)와 같이 임시정부 첩보원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액션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결합시키거나 <천의 얼굴: 실록 한일첩보전 시리즈 제1탄>(1976)처럼 영화 속에 김구, 장제스蔣介石 등의 역사적 인물을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는 장치로 활용하는 예들도 있었다.
한편, 1980년대 이후로는 한동안 영화 속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등장하거나 다루어지는 경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국영화와 임시정부가 다시금 관계 맺게 된 것은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1970년대 복고풍을 재연한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 리>(2000)의 리메이크작으로 기획된 류승완 감독의 극장용 장편 영화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를 통해서였는데, 시간적 배경이 1940년으로 두어진 이 작품에서 주인공 다찌마와 리(임원희 분)는 임시정부의 ‘비밀 병기’로 재설정되어 있다. 또한 첩보물과 액션물이라는 장르적 틀 위에 코믹 요소를 덧입혀 흥행성을 추구하였다.

©한국영상자료원

<상해임시정부>, 조긍하, 1969

©한국영상자료원

<뒷골목 오번지>, 장일호, 1970

이어, 업계의 호황이 이어지고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진 2010년대 중반부터는 제도권의 상업 영화 내에서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두는 경우가 다시 생겨났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최동훈 감독의 <암살>(2015)을 들 수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화려한 캐스팅, 현란한 카메라워크 등을 통해 장르적 효능을 극대화함으로써 1,270여만 명이라는 엄청난 관객 동원 수를 기록한 이 영화는, 만주사변(1931)과 상하이사변(1932) 직후인 1933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둔 채 임시정부 측에 의해 지목된 요원들 3인의 활약상을 담고 있다.
비슷한 시기 1920년대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의열단 소속 요원과 밀정, 일본 경찰들 간의 속고 속이는 심리전을 그린 김지운 감독의 <밀정>(2016)이나 1945년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위치한 하시마端島를 배경으로 노역 등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탈출 과정을 담은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2017)도 제작․개봉되었다. 두 작품은 영화 속에 임시정부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전자에서는 1920년대 상하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이 나오고 후자의 경우 광복군 소속 요원 박무영(송중기 분)이라는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임시정부를 연상케 하거나 그 존재성을 감지토록 한다.
근래의 양상은 어떠한가? 2010년대 중반이 지난 뒤로는 그렇다 할 예시를 꼽기가 수월치 않다. 하지만 2010년대 중후반에도 이준익 감독의 <동주>(2016)와 <박열>(2017), 이원태 감독의 <대장 김창수>(2017), 조민호 감독의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처럼 역사적 위인들의 삶을 다양한 시선과 영상 기법을 통해 조명한 여러 편의 영화들이 만들어졌으며, 엄유나 감독의 <말모이>(2019)와 같이 조선어학회에 초점이 맞추어진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2022년 말에는 동명의 뮤지컬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안중근의 영웅적 면모를 뮤지컬영화 형식으로 연출한 윤제균 감독의 <영웅>이 나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이 거듭되다 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작품들이 기획·제작되는 일도 또 다시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이러한 바람이 실현되려면 기본적으로 영화의 흥행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제작진의 노력과 대중들의 관심이 합해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쌓여 온 한국영화의 저력을 재차 기대해 본다.

©한국영상자료원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류승완, 2008

<암살>, 최동훈, 2015

<영웅>, 윤제균,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