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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온 소식

중경판 『독립신문』과 「창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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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판 『독립신문』과 「창간사」

중경판 『독립신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로, 1943년 7월 20일 창간호가 발간되었다. 이것은 사실 상해판 『독립신문』을 복간한 것이다.

— 글. 김주현(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중경판 『독립신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로, 1943년 7월 20일 창간호가 발간되었다. 이것은 사실 상해판 『독립신문』을 복간한 것이다. 상해판 『독립신문』은 1919년 8월 21일 창간이 되었지만, 일제의 간섭과 방해 공작, 신문사의 재정난 등으로 발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1926년 11월 30일까지 7년여에 걸쳐 198호를 발간하고 폐간되었다. 중경판 『독립신문』은 그러한 신문의 맥을 잇고 당대의 현실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롭게 창간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중경으로 옮겨간 뒤 선전위원회를 두고 대내외 선전 활동에 치중하기 위해 『독립신문』을 복간하였다.
상해판 『독립신문』은 국한문으로 발간되었지만, 중경판 신문은 중국어로 발간되었다. 그것은 먼저 국문 활자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상해 『독립신문』은 조선문朝鮮文 성경의 활자로 자모를 만들어 국한문판을 발간하였지만, 중경에서는 국문 자모를 구하거나 만들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중국에 있던 독립운동 단체들이 내는 잡지들도 중국에서 구하기 쉬운 한자로 발간되었다. 다음으로 이 신문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상해 시절에도 중국어판 『독립신문』이 1922년 7월 20일 창간되었지만, 1924년 3월경까지 40호 정도 나온 이후 발간되지 못했다. 임시정부에서는 우리의 독립운동을 전파하기 위해 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 등으로 발간할 뜻이 있었지만, 우선 중국어판을 내었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에게도 한국의 독립운동을 제대로 알리고자 한 것이다.
중경판 독립신문 창간사에서는 3·1운동을 ‘대혁명운동’으로 역사적 성격을 분명히 밝히고, 3·1운동 이후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신문의 발행 및 폐간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적시했다. 그리고 신문의 복간 이유를 “『독립신문』이 지닌 역사적 전통을 발양함으로써 3·1대혁명”의 임무를 완성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1) 국내 인민들의 반일투쟁과 중국에서의 한국 독립운동의 구체적인 모습 전파
2) 우리들의 의견과 요구를 중국 동포들에게 제시하고 또한 그들의 의견과 요구를 접수
3) 한국 민족의 역사 문화와 그밖의 혁명사료들도 중국 동포들에게 소개


이 신문은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의 실상(국내 인민들의 독립운동, 중국 내 광복군의 항전 성과 및 한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발전의 정세)을 전파함으로써 중국인들을 정신적으로 고무하여 한국 혁명에 대한 지원을 이끌어내고,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의 의견 및 요구를 주고받는 소통창으로 삼으며, 또한 한국민의 문화 역사 및 혁명 사료들을 소개함으로써 한국을 이해하는 데 참고자료가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한중연합 전선을 확대하여 한중 공동의 적인 일제를 물리치고, 대일항전의 승리를 통해 한국의 독립을 얻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중경판 『독립신문』은 임시정부의 기관지로서 한중의 연대와 호조를 바탕으로 항일 독립을 이룩하려는 선전지로서의 기능과 목적에 충실하였으며, 해방 직전인 1945년 7월 20일까지 그 명맥을 이어왔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항전 및 독립 의지를 불태운 것이다.

©독립기념관

창간사 創刊號

독립신문(중경판), 대한민국 25년(1943) 6월 1일

세계 제1차 대전 후에 한국에서는 위대한 3·1대혁명 운동이 발생했다. 이때부터 한국의 독립문제는 비단 한국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로 세계 문제의 일환이었다. 중일전쟁으로부터 시작해서 구라파전쟁・태평양전쟁 등이 연달아 폭발하면서 한국의 독립문제는 국제적으로 더욱 현저하게 그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세계정치가들의 관심은 점차 동방인 한반도로 향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 중 우수한 민족대표들에 의해 조직된 정치기구이다. 임시정부의 탄생은 한국 역사상 민주정치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3·1운동 이후 세계의 혁명정신이 실로 저조할 때에, 임시정부는 해외에 근거하여 허다한 어려움을 맛보았으며, 수많은 피눈물에 가득 찬 역사의 여러 페이지를 장식하였다.
그러나 암흑과 가시덤불을 파헤친 뒤 마침내 광명한 큰 길이 다시 우리들의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 한국 임시정부의 깃발도 보다 선명한 자태로 국제정치의 무대에 나타나게 되었다. 한국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 쟁취는 이미 3천만 한국 인민의 가장 우렁찬 구호가 되었다.
독립신문은 3·1운동 당시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의 모습과 임시정부의 활동을 정확하게 반영한 혁명적인 간행물이다. 최초 상해에서 발간된 『독립신문』은 지령이 198호에까지 이르렀다. 『독립신문』은 한국 3천만 인민에게 대하여 실로 놀라운 작용을 일으켜 만 이랑의 험한 물결이 이는 바다 위에 뚜렷한 하나의 등대가 되었다.
그러나 지나간 저 암흑의 밤중에 뚜렷이 밝게 비춰주던 등대는 불행히도 모진 바람에 꺼져버리고 우리들이 타고 있던 배도 물결에 흔들려 이리저리 밀리고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과 비는 멈추고 다시 물결이 안정되었으니 꺼졌던 등댓불을 새로이 밝힐 때가 되었다. 그리하여 방향을 잃을 뻔했던 배도 바로 전진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분명 현재 한국 혁명의 객관적 정세는 3·1운동 당시에 비해서 한층 유리하게 되었다. 한국 임시정부의 국제적 지위도 3·1운동 당시에 못지않다. 『독립신문』의 복간은 자연히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독립신문을 부활시켜야 할 뿐 아니라 시대의 변천에 적응하여야 하며 나아가서는 독립신문이 지닌 역사적인 전통을 발양함으로써 3·1대혁명이 완성하지 못한 임무를 완성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우리 『독립신문』은 오직 한국어 판만 있고 중국어 판이 없었다. 이에 우리는 한편으로는 한국어 판을 계속 출판할 것을 준비함과 동시에 또 중국어 판 창간호를 내는 바이다. 현재 세계 반파쇼전쟁 중에 있어서 한국의 독립운동은 실로 세계를 향한 선전이 부족하다. 따라서 우리의 『독립신문』은 세계 각국의 문자로 출판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중국글로 출판한다는 것은 가장 시급한 것이다. 중국은 우리 한국과는 좋은 일이나 불행한 일이나 함께한 진정한 우방이다. 역사상에 있어서나 지리상에 있어서나 또한 정치상에 있어서나 두 나라는 모두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두 나라는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의 압박 밑에서 똑같은 박해를 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중국의 대일항전 승리를 한국독립의 선결조건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때문에 우리 한국 사람들은 모두 항전에 참가하기를 원하고, 중국의 군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적을 죽였던 것이다. 과거 조선의용대와 현재 광복군의 깃발이 중국의 여러 전장에서 휘날리고 있다. 아리랑의 노랫소리는 화남부터 화북까지 퍼지고 있다. 중국의 대지 위에는 어느 곳이나 한국의 혁명건아들의 뜨거운 피가 뿌려지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니 중국으로서는 당연히 한국 독립운동의 발전을 위해야 하는 것이요, 또 이것이 항전을 승리로 이끄는 중요한 조건의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모두 막대한 동정과 원조를 주고 있는 터이다. 이 점 우리 한국 사람은 모두 중국의 위대한 영수領袖莊介石 위원장과 4억 중국 인민들에게 가장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그리고 저 강대한 적국 일본 제국주의와 싸워 이기기 위하여 우리는 다시금 힘을 공고히 하고, 또 한국과 중국 두 나라 민족의 연합전선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중국이 우리 한국 임시정부에 대해서 더욱 확실한 원조를 줄 것을 요구하는 터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우선 국내 인민들의 반일투쟁과 중국 국경 안에서의 한국 독립운동의 구체적인 모습, 특히 무장한 한국 군대들이 항전 중 세운 공적이라든지 그 밖에 한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발전의 정세들을 그때그때 중국의 형제들에게 알려줌으로써 그들의 정신적인 고무와 또 한국혁명에 대한 동정을 조장시키려 하는 바이다. 이 점이 바로 본 신문 간행의 주된 임무의 하나인 것이다.
이외에도 우리들이 원하는 바는 본 독립신문을 통해서 중국 동포들에게 우리들의 의견과 요구를 표하자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중국동포들이 우리들에게 보내는 의견과 요구도 이 신문을 통하여 접수하려 한다. 그리고 한국 민족의 역사·문화와 그밖의 혁명사료들도 중국동포들에게 소개함으로써 한국 문제를 연구하는 참고자료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본 『독립신문』을 발간하는 근본 뜻과 임무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의 역량이 부족한 것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러니 이 신문이 지닌 임무를 완성시키자면 중국과 한국의 인사들이 즐거이 원조해 주시고, 아울러 지도해 주셔야 할 것이니 이것은 비단 본 독립신문에 있어서 다행일 뿐만 아니라, 또한 중국과 한국 두 민족에게 다행한 일일 것이다.